니카의 반란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일어난 시민 폭동인 니카의 반란으로 유스티니아누스는 거의 제위를 빼앗길 뻔하였다. ‘니카’는 그리스어로 ‘이기자’ ‘정복하자’를 뜻하는 말로, 서커스나 전차 경주를 보면서 관중들이 외치던 응원 구호였다.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대전차 경주에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기수가 입었던 옷 색깔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중 청색당과 녹색당이 반란을 주도했다. 청색당은 원로원을 비롯한 상류층 인사들이 주로 속했고, 녹색당은 상공업자나 중간 관리직들이 주로 모였다.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는 청색당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두 당은 걸핏하면 거리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이 반란도 난투극이 원인이었다. 폭력 사태가 벌어지자 치안 책임자는 일곱 명을 체포해 사형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사형 집행 도중 사형대가 넘어지면서 두 명이 살아남은 데에서 시작됐다. 두 당 사람들은 이들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으나, 유스티니아누스는 이 기회에 당파 사이의 분쟁과 소요 사태를 뿌리 뽑으려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두 당 사람들이 힘을 합쳐 폭동을 일으켰고, 여기에 황제의 왕권 강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원로원 등 지배세력이 가담해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삽시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거리를 장악한 군중들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심복이었던 요하네스와 트리부니아누스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황궁으로 몰려들었다. 군중은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불을 지르고, 관리들을 살해하고, 심지어 하기야 소피아 성당을 불살랐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여걸(女傑)인 테오도라 황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외쳤다.[10] "황제는 황제답게 떳떳하게 죽어야 합니다."라고 격려하여[11] 황제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벨리사리우스 등의 장군들을 불러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